아빠의 장례식, 그리고 동생의 결혼식

열흘도 안되는 시간 동안 벌어진,

내 인생에 너무나 큰 일 두 가지.

 

정신 없이 다 치르고 다시 회사 책상 앞에 앉아있긴 하지만,

한 구석 멍 한 상태로,

가슴 한 언저리가 비어버린 듯한 느낌이 든다.

 

아빠의 장례식...
 




아빠...

나한테는 원망의 대상이었던 울 아부지.

몇 번을 거듭한 사업 실패, 폐 질환으로 인한 건강악화로, 사회 활동도 거의 못하셨기 때문에

날이 갈 수록 짜증과 자격지심이 늘어가는 듯 보였었다.

그래서 난 아빠를 미워하고 원망하고

아프시다고 해도 하루 이틀 아프셨던 게 아니니까 그러려니...

입원하고 싶다는 문자도 그냥 그러려니 하고 씹어버렸었는데...

 

그랬던 아버지가

입원 이후 급격히 상태가 안 좋아지셨다.

좋아졌다 나빠졌다를 반복하면서,

점점 더 힘들어지시는 것 같았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우리는 우리 네 딸과 매일 아빠 곁에 있던 엄마조차,

아빠가 이렇게 허망하게 가실 거라고 예상한 사람은 아무도 없었다.

 

아빠 퇴원하면 공기 좋은 곳이 좋겠다고,

입원하신 동안 우이동에 집을 구해 이사도 했고,

전동 휠체어도 사드리자고 얘기도 했고,

은영이 결혼식 때 병원에 계실 거 같으니,

간병인을 불러 며칠 엄마가 결혼 준비 해야겠다고 의논을 하기도 했었다.

 

병원에서는 진작부터

아빠 정도의 환자는 식사 중에 사레만 잘못 들어도 숨이 넘어갈 수 있는 환자이지만,

예후를 기대하기 힘들 정도로 폐가 많이 상해있어서

기관 삽관이나 인공호흡, 심폐소생술 같은 걸 실시하지 않는다며

가족들도 이에 동의한다면 위 시술을 받지 않겠다는 각서를 써야 한다고 했었다.

그런 얘기 들었을 때도

'아, 울아빠 이정도로 악화됐구나... 돌아가실 수도 있구나...' 라고 걱정하고 울기는 했었지만.

그래도 정말.

아빠가 정말 이렇게 빨리 돌아가실 거라고는,

생각 못했었는데...

 

둘째 딸 결혼식도 못 보고

특별한 유언 같은 것도 없이

울 아버지,

지난 6월 14일 오후 1시 10분… 눈을 감으셨다…

 

다행히도 전날 금요일 저녁에 진영이만 빼고 딸들 다 모이고,

우리 신랑과 예비 제부도 와서 인사를 했다.

제부 와서 엄마가 “윤희 아버지, 누구 왔나 봐봐.. 누군지 알겠어? 알아봐?” 라고 묻자

귀찮다는 표정으로 “그럼 사위도 못 알아볼까봐?”라고 말씀하시던 아빠 얼굴…

 

어쩜 그때도 나는 아버지 몸에서 생명이 빠져나가고 있구나…하고 느꼈던 거 같기도 하다.

단지 바로 그 시간을 지낸 다음 날 그렇게 될 거라고 생각지 못했던 것뿐.

 

병원에서 입원해 계신 아빠를 두어번 종일 챙겨드리면서야 알게 된,

울 아빠 이렇게 마르셨구나

정말 피골이 상접했다는 표현이 이런 거구나… 싶을 정도…

아우슈비츠 유태인들보다 더 깡마른 아빠 몸을 그때서야 봤다.

 

병원 계신 동안의 아빠는… 마르다 못해서 동생들이랑 농담처럼,

‘울 아빠 보면 사람 뼈가 뭐뭐 있는지 다 알 수 있다’고…

그런 말 하면서 씁쓸히 웃었었다.

 

그 마르신 몸

딸들 바쁘고 엄마는 일 나가시고, 

그 좋아하던 친구들도 못 만나고 집에서 혼자 지내시면서

고통스럽게 지내셨을 시간들.

난 짐작조차도 못했었다

그저 아빠의 짜증이

바쁜 다른 식구 생각 않는 이기적인 투정이라고만 생각했었다.

 

내가 참 못된 년이다

 

주치의까지도 아빠 고통도 심할 거고, 아빠만큼 증상이 심한 환자는 못봤다고 할 정도였는데,

난 그런 거 전혀 몰랐고, 별로 관심도 없었다.

그저 가끔 찾아가서 몇 푼 안되는 용돈 드리면서 생색이나 낸 거지.

아빠 맘 헤아려 볼 생각은 못하고 살았었다.

 

나 참 나쁜 년이다

 

아빠 돌아가시던 날 새벽부터 아빠 곁을 지키면서

그리고 장례식을 준비하고 아빠를 선산에 모시고 돌아오면서

그리고 지금까지도

그간 못했던 일들이 생각나서 너무 속상하고 죄송할 따름이다.

 

아빠 영정 사진을 찾으면서

십수년 이상을 아빠랑 다정하게 찍은 사진 한 장 없다는 걸 깨달았을 때

절망스러웠다.

 

그나마, 아빠 핸드폰을 정리하다가 발견한 동영상이 위안이 된다.

내가 재원이 낳고 집에서 산휴 중일 무렵에 아부지가 그 언덕길도 마다않고

몇 번 찾아오신 적이 있는데, 그때 찍어두셨던 재원이 동영상.

아빠 모습은 담겨있지 않지만 “재원아~” 하고 부르는 아빠의 목소리가 담겨있더라.

우리 아빠 목소리가 그렇게 다정한지 그때 처음 알았다.

그 동영상을 얼마나 여러 번 replay 했는지 모른다.

그거라도 찾을 수 있어서 참 다행이다… 하는 생각을 했다.

 

그리고 아빠 곁을 지킬 수 있어서.

아빠가 들으셨는지 몰라도, 아빠한테 ‘사랑한다’고 말할 수 있어서.

아빠 얼굴에 수십년만에 뽀뽀를 해드릴 수 있어서.

그나마 참 다행이다. 다행이다. 다행이다.

 

 

동생의 결혼식

아빠를 그렇게 모시고, 5일 만에,

은영이 결혼식이 있었다.

 

미리 다 정해놨던 거고, 미루는 것도 어려울 거 같아서,

양가 합의 하에 아빠 장례 후 예정대로 진행하기로 했다.

동생의 결혼식, 아빠의 자리는 큰아버지께서 대신해주셨다.

 

아빠 병원에 계시면서 몸이 많이 안 좋으셨기 때문에

입장은 신랑 신부 동시 입장으로 하기로 미리 합의해 놔서,

동생은 제부 팔짱을 끼고 이쁘게 씩씩하게 걸어 들어갔다.

 

아버지는 안계셨지만,

결혼식은 잘 치렀다.

 

성격이 밝고 분위기 메이커인 제부는 결혼식도 유쾌하게 잘 이끌어줬다.

엄마도 웃고, 나도 웃고, 하객도 웃었다.

그렇게 이쁘게 결혼식을 거행했다.

진심으로 고맙고 기뻤다.



<식장 사진은 아니다... 이건 드레스 고르면서 찍어둔 사진..
식날은 이보다 훨씬, 눈부시게 이뻤다...>

 

아버지가 계셨다면, 더 좋았을 건데…

은영이 낳을 무렵 일본으로 출장가셔서,

은영이가 태어나서 백일이 지나서야 귀국하셨다는 울 아빠.

 

그렇게, 세상에 나올 때도 곁을 못 지켜주시더니,

결혼하는 날도 곁에 있어주지 못하시고 가신 게,

내 맘에도 너무 안타깝고 슬픈데

은영이 그 녀석 마음은 오죽할까… 싶다.

 

이 악물고 우리 다들 꾹 참고 안 울었지만,
마음으로는 통곡을 했을 거다…

왜 아니겠나.

왜 아니겠나.

 

그래도 아빠, 아마도 은영이 생각해서 먼저 가셨나 보다 그렇게 생각하기로 했다.

아빠 병원에 남의 손에 맡겨두고 엄마랑 결혼준비 하는 것도 맘 편치 않을 거고,

병실에 아빠 혼자 있고 우리끼리 식장 가서 식 올리는 것도,

아픈 아빠 두고 신혼여행 길에 오르는 것도,

많이 불편했을텐데

아빠 차라리 그러지 말고 훌훌 털고 잘 치르라고 먼저 가신 거라고.

그렇게 믿기로 했다.

 

주말에 많이 온다던 비도,

일요일 예식날 아침까지 내리다가 거짓말 같이 맑게 게인 날씨도,

다 아빠가 보살펴주신 덕이라고.

그렇게 믿기로 했다.

 

그러니까 이제 나는,

사랑하는 내 동생들하고 신랑하고 재원이하고 함께

엄마 잘 챙기고,

각자 자기 인생 부끄럽지 않게 잘 꾸려가며 살면서

아빠 실망시키지 않도록 노력하면 되는 거다.

울지 말고,

밝고, 즐겁게, 행복하게!

 

말 없이 돌아가신 아빠가 바라는 것도 그런 것일 거라고,

미루어 짐작해본다.

힘 내자. 힘 내자. 힘 내자.

 

 

 
* 이 글 쓰는게 참 힘들었다.
몇 번을 날리고, 다시 쓰고,
쓰고 멈추고, 며칠을 들였다...

아직도 머리가 한 구석 멍해서...
정리가 잘 되지 않는데...
그래도 일단은 적어둔다.
이 감정을 잊지 않기 위해서...
아빠를 잊지 않기 위해서...
이 다짐을 잊지 않기 위해서...



* 아빠, 미안하고... 또 사랑해요.
거기서는 아프지 마시고, 좋아하시는 노래도 실컷 부르시고,
좋은 곳 뛰어다니며 즐겁기만 하시길 빌께요.
나중에 나중에,
제가 아빠 곁으로 가게 되면 그때 웃으면서 뵈요.
사랑해요.

by indie | 2008/06/25 14:46 | 끄적거림 | 트랙백 | 덧글(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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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ommented by TIPI at 2008/06/25 14:54
요즘들어 회사일이 부쩍 힘들고, 돈을 더 벌어야겠고,
하지만 일은 생각대로 안되고, 하루하루 시간은 지나가고 있고,
조바심이 들고 갑갑하고 짜증나고 화가 날 때 있고..
그렇게 변해가는 내 모습을 보면서,
벌써 돌아가신지 10년이 넘으신 아버지를 간혹 떠올리고는 합니다..

사업이 부도났을 때, 그 후에 또 한차례 사업 위기가 있었고,
그렇게 힘드시게 지내시다가 갑작스럽게 돌아가신 아버지..
나는 어떻게 살아야 할까요. 아직도 막막하기만 하네요.
Commented by indie at 2008/06/25 15:04
그 마음을... 저두 조금 알 것 같아요...
생전에 힘드셨을 건 짐작도 못했는데...
어느 새 그렇게 부모님을 보내고,
우리가 부모님이 되어가지요.
또 인생을 살아내야 하지요.
곁에 계셔주시면 힘이 될 거 같은데, 이미 떠나신 분을 불러보았자 소용은 없겠지요.

그저,
잊지 말구요...
그냥 하루하루 묵묵히 살아가면서,
아버지가 보시고 자랑스러워하진 못할 망정, 화 내시고 부끄러워 하실 짓은 하지 않도록
스스로 단도리하는 것이,
지금 우리가 할 수 있는 최선이리라는 생각을 합니다.

TP님이랑 하은이랑 너무 고마웠구요...
우리 같이 힘 내서 잘 살아보아요.
같이 노력해봐요.
잘 할 수 있을 거에요!!
Commented at 2008/06/26 12:59
비공개 덧글입니다.
Commented by indie at 2008/06/26 14:08
에궁... 고맙다...
은영이 결혼도 잘 치렀어. 다행이도~
다들 여기저기서 도와주신 덕이야.
아버지도 보살피셨을 거고. ^^

우리들, 부모님한테 잘 해야되는데, 그게 또 맘처럼 쉽지가 않다.
나두 아버지때 많이 느꼈어도 또 잘 안돼...
자식은 그런건가부다...

우리 자식들도 우리에게 그렇겠지?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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